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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하는 남편

3. 입덧의 괴로움 (남편 이야기)

임테기로 임신을 확인하는 시점부터 아내는 속이 좋지않았고 기운이 없어졌다.
'설마 임신아니야? 하하하하' 이랬던 대화는 사라지고 "진짜 임신"이라는 사실만 남았다.
아내는 임신 6주차부터 냄새에 굉장히 예민해졌다. 그 범주가 굉장히 다양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냉장고 속 냄새, 밥짓는 냄새, 샴푸, 바디워시, 치약 냄새까지 광범위하게 다 다른 시기였다. 냄새에 예민하다 자부했던 나였는데, 임신 한 아내의 초인간적인 후각은 이길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모든 향들을 거부하는 시기였다.
이번 기회에 아내와 뱃속 태아에게 좋은 성분의 샴푸와 치약들을 구입했다. 특히 헛구역질을 많이 하는 입덧 시기에 양치는 굉장히 괴로워보였다. 가글도 비치해두고 양치가 너무 힘들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힘든 시기니까 예쁜 풍경으로 극복의지를 다졌다.

입덧의 시기는 평범했던 모든 일상이 침해받는 시기이다. 우리에게 입덧의 어려움을 더욱 더 경고해주지 않았던 선배 부부들과 어른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입덧은 서서히 괜찮아지고 육아의 시간에 비하면 한없이 짧은 시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아침식사를 안할수도 할수도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평소에 오트밀, 아몬드브리즈, 과일로 간단하게 먹거나 안먹기도 했는데 아내 속이 너무 좋지 않아 무엇이라도 먹어야했다. 숙취가 지속되는 느낌을 잠잠하게 하기위해 뜨겁고 매콤한 것을 원했다. 그런데 밥과 국을 하면 냄새때문에 너무 괴로워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아침을 먹어야하는데 준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찾은 방법은 누룽지와 고추참치, 오징어젓갈이다. 간단하게 끓이면 금방 완성되고 밥 짓는 냄새보다 덜해서 아내가 견딜 수 있었고 국없이도 뜨끈하게 먹기 좋았다. 고추참치와 오징어젓갈은 바로 꺼낼 수 있고 누룽지랑 같이 먹기에 간이 딱 좋았다.
하지만 아침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누룽지도 소용이 없다. 입덧캔디 하나 먹고 누워있는 아내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무사히 출근하길 기도하며 먼저 집을 나서야할 때도 있었다. 남편 입장에서 100% 동일하게 느끼기 어려운 고통이고 퀴즈쇼처럼 완벽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괜찮던 음식이 내일은 아주 못 먹게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 정도와 시기의 차이도 커서 쉽게 예상할 수 없다.

저녁 시간 디카페인 커피 한잔을 위한 산책이 아내를 위로해주었다.

아내의 급변하는 기분(대부분 저기압인 상태)이 평소와 달라 너무 생소하게 느껴졌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내가 무언가 하는 것이 방해가 되고 아내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임신 초기부터 이렇게 험난하면 난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울한 기분으로 설거지를 하다가 친구의 카톡을 받았다.

"힘들면 나한테 전화해라...미루어 짐작이 간다..."

모든 것을 알고있다 느껴지는 친구의 한 마디가 위로가 되었고, 많은 예비 아버지들이 이 시기를 비슷하게 겪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모두가 잘 지나왔듯이 나도 잘 지내봐야겠다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입덧은 아내와 남편 모두에게 괴로운 시기이다.